잘 울고 고집세고 양보할 줄 모르는 아이였다던 나의 어린시절. 어른들이 말해주는 그런 이야기들은 기억나지 않는 것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할아버지와 관련된 몇가지 장면들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영화를 보듯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엄마와 할머니에게 여쭤보니 5살도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라고 한다.
어릴 때 살던 강릉집은 요즘 TV드라마에 나오는 것 같은 거대한 저택이었다. 할아버지와 나는 마당에서 주로 그림자 놀이를 하고 놀았다. 흙바닥에 생긴 나의 그림자를 따라 할아버지가 막대기로 선을 긋고, 그 선을 따라 작은 돌멩이들을 촘촘히 장식해 놓는 소소한 놀이였다.
뭔가를 타고 노는 걸 좋아했다. 마루에서는 꼬마 자동차를 타고 놀았고 밖에서는 세발 자전거를 타고 놀았다. 내 곁에는 항상 할아버지가 계셨다. 동네에서 세발 자전거를 타고 놀다가 언덕길이 나오면 할아버지는 자전거에 끈을 묶어 끌고 올라가 주시곤 했다.
파란 하늘에 양떼같은 뭉게구름이 피어있는 화창한 날이었다. 맑은 물이 찰랑찰랑 거리는 논에는 이제 막 모내기한 모가 심어져 있었다. 그 날 할아버지는 술을 잔뜩 마시고 논둑에 쓰러진채 주무시고 계셨는데, 지나가는 아저씨들마다 할아버지를 알아보시고는 옆에 있던 나에게 말을 건넸다. 아빠의 사업실패로 강릉집을 팔아야 한다고 했던 날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직후부터 나는 뒤늦게 사춘기 흉내를 내며 본격적으로 삐뚤어지기 시작했다. 그것이 무려 22살 때이다. 내 영혼의 버팀목이 누구였는지를 알수있는 사실이다.

오~~전원주택..아니 저택에서 사셨었군요..^^
저는 할아버진 두분다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고, 그나마 기억에 남아계신건 외할머니... 가끔 할머니가 생각나요.
빈이님글 속에 손녀를 향한 사랑이.. 그리고 할아버지를 향한 빈이님의 그리움이 찡하게 와닿네요...
동화책에 나올 것 같은 인자하고 훌륭한 할아버지셨어요.
방학때면 한달을 할아버지댁에서 보내곤 했었죠...